본문 바로가기

기타 일상/일상

새벽 산책에서 보고 들은 것

가을답지 않게 바람이 찼다. 반팔 위에 대강 걸쳐놓은 후드 집업이 약간은 아쉽게 느껴진다. 차라리 좀 더 무리해서 덥게 입을 걸 그랬나? 하지만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그건 또 좀 그렇다. 원래 나올 때는 세 가지 중 하나였다. 지금 바로 일을 하든가. 피시방에 가서 이 우울한 마음을 조금은 달래든가. 아니면 바로 A의 집으로 향하든가. 오늘의 약속은 점심. 굳이 그 전에 가봤자 잠만 깨울 터였다. 그렇다면 가더라도 바깥에서 시간을 떼워야 하는데. 그쪽은 거주 지역이라 그런지 이런 새벽 시간에는 연 곳이 없다. 하지만 우울해서 집을 나섰는데, 내가 그 기분으로 일을 하러 갈까? 나는 당장에도 할 일이 많이 쌓여있고, 프리랜서라 출퇴근은 자유롭다. 다만 내 명성과 인생을 걸고 그저 맡은 바 일을 잘 해내면 되는 것이다.
 
돌아와서,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고 나는 걸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으로는, 일단 자전거를 여는 데까지만 하자. 따릉이 앱을 켜고 자전거를 연다. 옆을 보니 어떤 한 아저씨도 자전거를 열고 있다. 나보다 먼저 열고는 그 아저씨는 허둥지둥 타고 간다. 일에 늦었을까? 이 시간에도 저렇게 급하게 가야되는 일이면 정말 일찍 시작하나보다. 참 세상은 이 시간에도 이렇게 열심히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내 자전거도 열리는 소리가 났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정말 차다. 이 바람을 헤치고 자전거를 타면 감기에 걸릴까? 하지만 그만큼 상쾌할 것 같다. 나는 첫 페달을 밟는다. 그래 무슨 일이든 첫 페달이 시작이고 반인 것이다. 그렇게 자전거가 속도를 낸다. 운이 좋다. 이건 좋은 자전거인 것 같다. 손잡이도 딱 손에 감기는 것이고, 페달도 아주 부드럽다. 사람도 얼마 없는 자전거 도로를 점점 속력을 내며 달린다.
 
내 뺨과 귀를 스치는 바람이 정말 차다. 동시에 나를 기분 좋게 소름돋게 한다. 나는 이럴 때면 중학 시절 기숙학원이 생각난다. 그때는 새벽에 나가 체조를 시켰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게 그리 추웠는데 지금 이렇게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왜 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일까. 그때는 나름의 힘든 일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나름의 고민이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고민이 없던 시절은 아주 어린 시절, 아니면 대학 입학 후 새내기 시절. 아니 아주 어린 시절에도 나는 할머니와 떨어지는 것을 힘들어했다. 결국 나의 가장 고민 없던 시절은 새내기 시절. 고민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누군가의 말을 따른다면, 가장 철없던 시절은 아이러니하게 갓난아기 때가 아닌, 나이를 좀 먹은 새내기 시절이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듣고 있던 팟캐스트가 끝이 났다. 이런, 자동 반복 설정이 안 돼 있나보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라 그저 귀마개를 하고 가는 것마냥 주위가 먹먹하다. 이럴 바에야 한번 주변을 느껴보자. 나는 주변 소음을 키워주는 모드를 작동시키고 페달을 계속 밟는다. 자라락 하는 자전거 소리, 탁탁 굴러가는 낙엽소리, 그 모든 소리가 맨 귀일 때보다 3배 이상 선명하고 크게 들린다. 이건 보청기인가 싶어 헛웃음도 난다. 하지만 그렇게 타고가니 아주 새로운 느낌이다. 새벽을 좀 더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느낌. 그래 이제는 예전 홍콩 여행할 때가 생각난다. 약 6년 전, 그때도 굉장히 추웠다. 나는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배를 타고 오는데, 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람이 내 귀를 식혔는데, 아릴 정도는 아니었으니 겨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배 위에서 오는 밤하늘을 보며 나는 행복하다 느꼈던 것 같다. 그런 여유와 행복이 느껴본지 꽤 오래다. 지금 이렇게 자전거라도 타면서 느끼니 새롭다.
 
나는 지하철을 타러 간다. 찍고 지하철로 내려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정말 이 시간에도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예전 여의도에서 일할 때도 그러고보니 이 시간쯤 나갈 때가 종종 있었다. 마침 지하철이 들어오는데 끝자리가 있다. 그런데 뒤에 줄 서 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앞으로 나오시더니 그 자리를 향해 달려간다. 나는 그 할머니보다 앞에 있지만 참 그 할머니를 제치고 뛰어가자니 그것도 한심해보이고. 그 할머니를 보니 참 그 억척스러운 인생에 또 버거운 마음과 울적한 마음이 들어서 나는 지하철을 그저 보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올라온다. 아까의 그 자전거를 어떤 여자가 빌리고 있다. 앱으로 찍는데 잘 안 찍히는지 계속 찍고있다. 그냥 안 찍히면 좀 다른 걸 찍으면 좋겠는데 억척스럽게 내가 가까이 가서 꽤 오래 기다릴 때까지 계속 그걸 찍고 있다. 그걸 보니 또 한층 더 마음이 갑갑해진다.
 
나는 억척스러운 사람이 싫다. 그 물불 안가리는 그 마음이 나는 버겁다. 나도 나름은 열심히 살아왔고 많은 것을 이루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남들을 신경쓰지 않고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좀 갑갑해진다. 거울을 보는 것 같아 그런가. 내 인생이 저렇게 보일까.

'기타 일상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면(Insomnia)  (0) 2024.04.06
워커홀릭(Workaholic)  (0) 2024.04.06
스마트폰과 우울증  (1) 2023.12.08
인간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법  (0) 2023.10.02